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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역사

 

동포이민사

국내 최초 이민 ‘하와이 한인’


19세기 후반 우리나라는 서구 열강의 조선 진출에 따른 이권 개입 경쟁으로 많은 정치적으로 혼란했고 가뭄으로 인해 혹독한 굶주림이 계속되었다.


이런 가운데 서민들은 빈곤과 불안정한 정세를 벗어나려던 정치적, 사회적 요인으로 하와이로 이민을 결행하게 되었다. 당시 하와이에서는 설탕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면서 조선인 노동자를 받아들이게 됐다.


1902년 12월 22일 월요일, 하와이 첫 이민단 121명이 인천 제물포를 떠났으나 일본 나가사키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19명이 탈락, 102명만이 갤릭호를 타고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이민 공고문과는 달리 짐승우리와 다름없는 판잣집에서 기거했고, 사탕수수 농장에서 하루 10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렸다. 임금은 남자가 하루 1불25센트, 여자가 50~60센트를 받는 것이 고작이었으나 저축하고, 본국에 송금하면서 다른 이민자들보다 근면 성실하게 일했다.


대부분 노총각이던 그들을 위해서 소위 사진신부도 등장했다. 사진으로 선을 보고 신부들이 하와이로 건너온 것이다. 그들은 많은 고초와 갈등을 겪으면서도 한인사회 안으로 안정되게 적응했다.


 이민사에서 주목할 점은 1세대들이 분연히 독립운동에 앞장섰다는 것이다. 그들은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공채를 발행하고 이를 모아 하와이와 중국 등지의 독립운동 단체로 보냈다.

 제1차 세계대전 후부터는 한인들의 생활이 점차 안정을 찾았고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나서는 하와이가 군수품 특수를 누리면서 한인사회도 크게 성장했다. 현재 한인인구는 2만5천여 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는 하와이주 대법원장, 군 장성, 고위 공무원 등 주류사회 진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한인들은 광복 후 이민의 출발지이자 고향인 인천에 대학을 세우자는 뜻으로 수십만 달러를 모았고 인천과 하와이의 유대관계를 잊지 않기 위해 인천의 ‘인’과 하와이의 ‘하’를 따서 학교이름을 인하대학으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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