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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바람따라 - 경남 통영 편

길따라바람따라 - 경남 통영 편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은 자신의 음악 대부분이 자신이 나서 자란 <고향>에서 발원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를 이끌어가는 원초적인 영감과 삶의 밑그림에는 항상 그의 고향사랑이 깔려 있다고 했다. 그에게 있어서 고향이라는 것은 숙명이었고 자기 자신의 일부였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의 고향은 경남 통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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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본향이라고도 하고, 문화의 고을이라고도 부른다. 동양의 나폴리라고도 칭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혹자는 맛과 멋의 도시라고 그 권역을 확대하기도 하는 통영은 다채로움의 땅이다.


남으로, 남으로 시원하게 달리던 반도가 태평양의 푸른 파도 앞에서 잠시 무릎을 꿇고 그 웅장했던 백두지세를 다소곳이 넘겨 비로소 바다가 시작되는 곳, 바로 그곳에 통영(統營)이 있다. 삼도수군통제사의 통제영(統制營)이 있어서 통제영으로 부르다가 통영이 되고 1995년 충무시와 통영군이 화학적 통합을 거쳐 <통영시>가 된 곳. 고성반도와 한산도, 그리고 미륵도로 그 이웃을 나누고 어느 한곳 낯설지 않은 그 곳에서 14만 여명의 선한 이들이 따듯한 체온을 부비며 사는 곳이 통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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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통영>은 통영이 아니다. <토영>이다. 통영사람들은 토영이라고 부르고 토영사람으로 불러 주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통영>이 아닌 <토영>속에 그들의 원래 모습이 담겨있고 또한 그들의 진솔한 정령이 침잠되어 있다고 믿는다.

하늘이 막바지 열기를 토해내고 그 열기가 쌓이고 굳어져서 산하의 모든 품에다 야무진 열매들을 만들고 있을 즈음 찾았던 통영여행길... 그 땅에서 나서 그 땅을 밟고 그 땅을 그리워하며 그 땅에서 사랑을 나누고 가신 그들의 흔적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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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눈에 보이고 손으로 잡으며 귀로 들리는 것만을 찾아 가는 게 아니다. 때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더 아름답고, 귀에 들리지 않지만 더욱 잔잔하며, 손으로 만질 수 없어도 한 없이 부드러운 그런 여행도 의미 있을 터. 기억 저 편에, 가슴의 뒤안길에 세워둔 그들의 조촐하고도 생생한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도 섞어볼 일이다. 하물며 거기가 통영이라면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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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는 통영인, 그들이 그들의 흔적을 골목골목 따라다니며 작은 이정표와 누추하지 않은 표지석으로 만들어 둔 작은 골목길이 있다. 그들이 일일이 발로 만들고 세월로 다듬어서 그저 있는 그 모습에다 약간의 알림줄만 쳤을 뿐인 길, 이를테면 앞서간 분들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이다. 이름 짓기를, <토영 이~야길>! “이야”는 토영말로 “누이”의 의미이다. 누이를 보다 친근하고 애교 있게 황토색을 입힌 말이다. 따라서 토영누이의 길, 토영누나의 길, 또는 통영 이야기길...아무래도 좋다. 누이라도 좋고 언니라도 좋고 내킨 김에 통영 애인의 길이라도 틀릴 까닭이 없다. 누이든 누나든 애인이든 다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토영 사랑길>이라고 부르고 싶다. 거기에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의 길은 어디서 시작해도 좋다. 시작하는 그 곳이 토영이야 길의 시작점이다. 마치 사랑이 그렇듯...

통영 중앙 우체국...초행길의 무지 탓으로 행상을 하시는 초로의 아저씨에게 길을 물었으나 잘 모르신다. 시(詩)에 등장하는 그 (중앙)우체국을 물어서 찾은 바로 그 사연과 곡절의 장소. 그들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은 비록 통영사람이 아니어도 한 번쯤 찾고 싶은 곳이다. 청마 유치환(1908~1969, 통영 태평동)과 그의 안타까운 여인 정운(丁芸) 이영도(1916~1976, 시조시인)의 가슴 아림이 스며있는 곳. 청마는 20년간을 매일처럼 그녀에게 간절한 사랑을 썼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바로 그 우체국이다. 그녀를 만나서 끊임없이 사랑했던 그 20년 세월동안 그녀에게 5,000통도 넘는 편지를 쓰고 그 대부분을 부친 곳. 그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었다거나 그녀에게 전남편의 아이와 시댁이 있었다는 도덕심 가득한 원론은 얘기의 발생지가 물빛 좋은 통영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만으로 잠시 밀어두자. 단지 그들의 처연한 현실 앞에서 절망이 되고 한이 되었을, 그래서 당연히 미완성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이야기의 언덕위에서 청마의 여인은 절규한다. 갈 수 없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저 깊은 심연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본능과 사랑의 틈새에서 정운은 이렇게 신음한다.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 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舍利)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청마의 염원대로 사랑은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처럼 열렬히 사랑하고 여물기를 기원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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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되더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그의 사랑은 결국 예언이 되었고, 그의 예언처럼 그는 진정 행복하게 떠났을 것이다. 여기 우체국, 시비하나라도 놓여 있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소도시의 우체국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작은 공간 자판기 음료수라도 하나 물고 미처 하지 못한 편지 한 줄이라도 쓰고 보낼 수 있는 그런 작은 공간이라도 만들어 두었으면 하는 것은 철없는 나그네의 사치일까.


 꽃의 시인임을 스스로 자부했던 대여(大餘) 김춘수(1922~2004, 통영 동호동). 그는 항상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시를 쓰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이승을 하직한 이후에도 변함없는 사랑을 고수했다. 음식마저 그녀의 사랑이 담긴 아내표를 고집했던 그는 가볍지 않은 그만의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되고
...............(중략)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  그는 훗날 이 시를 헌정했던 사랑하는 님을 “까마득한 어둠”으로 먼저 보내고 수많은 사부곡을 통해 완전히 해갈하지 못한 나머지 사랑을 세상에 남긴다. 그가 살았던 생가 터, 동상, 시비가 통영시내 곳곳에 그의 말대로 “하나의 몸짓”이 되어 여전히 살아 있었다.







 초정거리에서 만난 그의 좌상은 그의 성품을 닮았다. 이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다리를 괴고 앉아 먼 곳을 주시하는 그의 시선에서 차가운 듯, 그러나 백자의 내밀함과 초연함이 배어난다.


찬 서리 눈보라에 절개외려 푸르르고

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

이제 막 백합 한 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   초정(艸丁) 김상옥(1920~2004. 통영 항남동). 모국어의 진정한 연금술사인 초정 선생의 봉선화와 백자사랑은 남망산 조각공원에서도 만날 수 있다.


통영거리, 아니 토영이야길에서는 만날 수 있는 사람과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것들이 많다. 이야기도 물론 많다.?<김약국의 딸들>이 살을 부대끼며 오고갔던 길들이며 그들을 세상으로 이끌어 냈던 박 경리(1926~2008, 통영 문화동)의 흔적들과, 청마의 형이기도 한 유치진(1905~1974, 통영 태평동)의 숨결, 그리고 멀리 수 천리를 멀다않고 달려와서 노래한 시,<통영>속의 여인 “천희(千姬)를 사랑한 백석(백기행 1912~1995).


캔커피 하나들고 시나브로 걸으며 세월도 훔치고 그들의 발자국도 밟아보며 바쁠 것 없이 갈 수 있는 길, 그런 길이다, 통영의 길은. 걷다가 때 이른 허기라도 느낀다면 통영출신 남자들이 군대가면 제일 먹고 싶어 한다는 ‘꿀빵’이라도 두어 개 사서 임시요기를 해도 좋고, 한 잔 술로 객고를 풀고자 한다면 통영식의 술과 안주의 세트메뉴인 “다찌”방 선술집도 찾아 그들 또한 그 술을 음미했을 그 시절의 가벼운 취기를 느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바다색을 너무나 사랑했던 화가 전 혁림(1916~2010.통영시)에게 과객이 물었다. “선생은 왜 그토록 코발트 블루를 좋아하세요? 무슨 까닭이라도 있으세요?” 그가 말했다. “까닭은 무슨, 내 집 앞의 그 흔한 바다색이 그 색깔이니까, 하늘도 그렇고!” 그의 그림에는 온통 청색이다. 바탕색에 다름 아니다. 통영의 길 일부에는 그의 그림이 도자화되어 인도를 장식하고 있다.


건물들의 무질서한 신축으로 바다가 가려지고 무엇인가가 섞여 그 색을 다소 흐리게 하고 있지만 아직도 통영의 바다는 충분히 푸르다. 그 푸르름을 조금 더 온전히 보고자한다면 동피랑에 올라 인공미 물씬한 벽화들과 더불어 통영을 훑어 볼 것이며, 때로는 남망산에 올라 동백숲길 사이로 드러나는 내항의 야경과 미륵산을 대비하여 조망해도 좋고, 조금 더 먼 바다의 채색을 추구한다면 제법 발품을 팔아 미륵산을 올라도 좋을 것이다.

통영을 찾는다면 서둘지 않아도 좋다. 옛사람을 만나려면 그들의 체향을 조금은 알고 와도 좋다. 아니, 그냥 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들은 항상 그 자리에서 원래 자신들의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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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기록했던 어느 외국인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통영은, 영적 비타민이 쏟아져 나오는 도시...”라고.? 통영은 옛사람들의 모습으로 걸어도 좋고 지금 그 모습 그대로의 가슴으로 걸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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